<슬리핑 뷰티>의 최고의 수확은 바로 감독이다.
역량 있는 감독을 만나는 일은 현재의 황의 한국 영화시장에서 얼마나 값진 일인지!
중학생 재학부터 꾸준히 영화 연출을 꿈꿔오며 실제 시네마 키드로 많은 영화 연출에 참여해왔던 이한나 감독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슬리핑 뷰티>의 가장 큰 미덕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영화가 제작이 완료된 이후 많은 사람들을 그녀를 ‘여자 김기덕’이라고 불렀다.
김기덕 감독의 초기 작품들이 인간의 욕망과 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이한나감독 역시 <슬리핑 뷰티>를 통해 수동적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욕망과 폭력을 부담스러우리만치 잔인하고 사실적으로 그려 ‘여자 김기덕’이라는 그녀의 별명을 또 한번 현실화 시켜주고 있다.
<슬리핑 뷰티>의 관람을 마친 관객이라면 그녀의 여성스러운 외모에 숨겨진 잔혹하리만큼 사실적인 독기의 차기작이 궁금해질 것이다.

제목의 의미 ‘슬리핑 뷰티 ？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잠자는 미녀’는 모든 이가 꿈꾸는 이상적인 여성이다. 이 동화가 품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아주 명백하다. 소녀는 ‘백지 상태’ 이고 , 젊은 남작 그 위에 자신의 환상을 새긴다는 것이다. 소녀는 잠들어 있기 때문에 남자에게 어떤 걱정거리도 주지 않고 말도 없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그녀를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초기의 이야기들에서는 하나같이 남자가 잠들어 있는 여자를 겁탈한다. 훗날 그림 형제가 수집한 이야기들과 디즈니 만화에서는 남자가 단 한 번의 키스로 여자를 깨운다.
잠자는 미녀는 점점 깨어나고 있는 성욕을 받아들이는 사춘기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보다는 소녀들에게 남자의 성욕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성욕은 포기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 물정 모르는 잠자는 미녀는 억눌린 공포 속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내내 잠만 자면서 우리에게 왕자에 대한 헛된 꿈만 심어준 것이다.
여기에서 <슬리핑 뷰티>는 시작한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여자의 性 그리하여 남성으로부터의 ‘성/폭력’에 여지없이 노출되어 있는 여성의 현주소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여자의 영화

영화 <슬리핑 뷰티>에는 선한 처녀나 나쁜 요부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혼란을 겪는 혼란중인 여성들이 존재할 뿐이다. 더불어 과시와 연민으로 가득 찬 자기애나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자기파괴 의지 역시 배제되어 있다. 불안과 매혹에 겹침 속에서 상처받고 또 성장하는 여성을 시적 이미지와 풍부한 색체로 담아낸 ‘속삭임’ 같은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슬리핑 뷰티>가 여성 영화로 표방될 수 있는 것은 여성 감독의 연출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인생의 화두이자, 스스로의 고민을 통해 같은 여성들과 공감하고 대화하고 싶은 여성의 정체성이 이 영화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젊은 영화인들의 패기있는 도전!

이 영화를 연출한 이한나 감독은 83년생으로 24세가 되는 2006년도에 <슬리핑 뷰티>의 촬영을 시작하였다. 2004년에 완성된 시나리오를 영화화하기 위하여 감독은  김승준 촬영 감독과 함께 헌팅, 콘티를 완성하여 제작지원 서류를 작성하는 등 젊은 패기와 열정으로 작품에 올인 하였던 것.
시나리오 단계부터 권위 있는 대산 문학상에서 군계일학의 작품으로 평가 받았으며 다양한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젊은 감독의 젊은 문제의식이 만들어 낸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와 젊은 스탭들이 만들어낸 차분하고 완벽한 프리프로덕션 덕분일 것이다.

 

 

 

줄거리                                                      
이한나 감독은 '여자 김기덕'이다. 지독하다! 불편하다! 당혹스럽다!

첫 번째 공주 이야기 - 나의 사촌
초등학교 6학년 도연은 여름방학 중 외할머니의 임종으로 시골로 내려간다.
장례준비로 바쁜 어른들 속에서 도연은 오랜만에 만나는 동갑내기 외사촌 상준과 시간을 보낸다.
여름 밤의 고즈넉한 장례풍경과 엄마의 울음소리, 풀벌레 소리... 다른 어린 사촌들과 사랑방에서 함께 자는데 옆에 누운 상준이 도연의 손을 잡으며 좋아한다고 말한다. 왠지 모를 설렘과 떨림으로 도연은 혼란스럽다.
3일장 기간 동안 상준과 성적인 장난을 하며 묘한 불안감속에서 즐거움과 죄책감을 느끼는 도연은 마지막 날 밤 상준의 제안으로 학교담을 넘어 빈 교실에 들어가는데 성공하고 둘은 서툰 입맞춤으로 첫경험을 하는데….
“구멍이 작아서 잘 안돼!”
“우린 모든 걸 잊어버리겠지?”

두 번째 공주 이야기 - 겨울잠
나이 오십의 소규모 오리농장을 경영하는 무뚝뚝한 이례는 남편도 자식도 없이 치매 걸린 늙은 아버지와 살고 있다. 조류독감의 창벌로 모든 오리들을 살 처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경제적인 사정은 더욱 나빠지고 갈수록 심해지는 아버지의 치매증상에 삶이 지긋지긋하기만 하다.
밥도 먹여줘야 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이례의 손을 자신의 성기에 갖다 대며 좋아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례는 아버지를 독방에 가둔다.
키우던 오리를 모두 산채로 땅에 묻던 날 이례는 오리와 함께 아버지를 땅에 산채로 파묻는 상상을 하고는 독방에서 배설물을 뒤집어 쓴 아버지를 꺼내 씻기고 먹인 후 스스로 아버지의 자위를 돕는데……

세 번째 공주 이야기 -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조선족 모녀가 전문 브로커를 통해 엄마는 한국남자와 재혼을 딸은 시골로 입양된다. 17살 수진은 새로운 아버지, 할머니, 조카뻘의 남자아이 진서와 새로운 가족을 이루게 된다.
입양된 첫날 할머니 옆에 잠자리를 꾸리던 수진은 아버지의 부름으로 안방으로 건너가게 되고 김씨의 과격한 폭력 앞에 순결을 잃고 안방에서 생활하게 된다. 가족들의 침묵, 계속되는 성폭력과 노동 속에 입양된 딸이 자신이 처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더불어 자신이 임신했음을 감지한다.
만삭의 어느 날 수진은 숲에서 가스에 취해 쓰러진 진서를 발견한다. 늘 교복의 진서를 동경해왔던 수진은 그 역시 세상의 폭력에 괴로워하는 본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진서의 제안으로 함께 가스를 흡입한 수진은 오랜만에 해방감을 맛보며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김씨의 자비 없는 무차별 폭력뿐. 어느새 진서의 손에는 식칼이 들려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