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한 애니메이션 작가 제프 던바는 5년간에 걸친 BBC와의 작업 끝에 음악과 영상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영리한 암여우'를 내놓았다. 이 애니메이션이 BBC2를 통해 방송되었을 때 전유럽이 보인 센세이셔널한 반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원작이 품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오페라 이상으로 살아났기 때문이다. 우선 수채화 톤의 화려한 경치를 배경으로 숲 속 동물들의 사실적인 움직임과 표정이 섬세하다.
모기가 술취한 수렵장지기의 피를 빨다가 덩달아 취하거나 여치들이 거미줄을 타고 먹이를 나르는 등 실제 오페라 무대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힘든 장면들을 이영상물은 아무런 제약없이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보는 이를 탄복하게 만드는 것은 영상이 음악과 정교하게 맞아질 뿐 아니라 간주가 진행하는 동안의 많은 여백을 뛰어난 상상력으로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암여우 비스트로우슈카의 죽음을 밀렵꾼의 오발에 의한 것으로 설정한 장면은 슬픔과 여운을 배가시키는 기발한 아이디어이다.
DVD는 앵글 기능을 통해 장면마다 스토리보드를 제공함으로써 어떤 식으로 그림을 '설계'했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영상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에 상응하는 음악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압도적인 감동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켄트 나가노 지휘의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는 시종 미려한 관현악을 선사한다. 유럽 연합 오페라 센터에서 캐스팅된 젊고 유능한 가수들은 연극 같은 오페라에 충실하여 야나체크의 진수를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