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그네리안들을 당혹케 만들었던 21세기 최고의 문제 연출작 DVD로 등장하다.

함부르크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봄의 제전’의 초연 당시를 방불케 하는 격렬한 찬반논쟁을 낳았던 피터 콘비츠니의 로엔그린 프로덕션이 DVD로 발매되었다. 2006년 7월 리세우장에서의 리바이벌을 수록한 것으로, 왜 이 프로덕션이 여러 바그네리언들을 그토록 분노케 만들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교실 로엔그린’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프로덕션은 이 오페라의 배경인 중세의 브라반트를 현대의 한 초등학교 교실로 바꾸어놓았다. 브라반트의 귀족들은 나무칼을 들고 설치는 철없는 ‘초딩’들로, 엘자는 소심한 왕따 여학생으로, 오르투르트와 텔라문트는 완력으로 이 교실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일진들로 제각각 모습을 바꾸었고, 로엔그린이라는 한 얼뜬 어른이 이 교실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급파된다. 콘비츠니는 이 연출을 통해 바그너가 주창했던 위대한 게르만의 정신이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를 강력히 설파하고 있다. 특히 위대한 독일의 영도자를 맞으라는 로엔그린의 일장 연설 이후 기관총을 들고 등장하는 꼬마 고트프리트의 모습은 히틀러라는 함량 미달의 지도자에 열광했던 독일국민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듯하다.

- 바그너가 구상했던 이 오페라의 본 내용음 대략 다음과 같다. 독일 왕 하인리히는 군대모집을 위해 브라반트를 찾는다. 이곳의 섭정 텔라문트는 죽은 영주의 딸 엘자를 동생 고트프리트를 살해한 혐의로 왕에게 고발한다. 때맞춰 백조가 이끄는 배를 타고 온 정체불명의 기사가 텔라문트를 내쫓고 엘자의 마음을 차지한다. 기사 역시 엘자를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정체를 궁금해 하지 말라는 조건을 붙인다. 텔라문트의 아내 오르트루트는 엘자에게 남편에 대한 의심을 낳게 만들고, 결국 첫날밤 엘자는 금기의 질문을 하고 만다. 기사는 자신이 성배의 수호자 로엔그린임을 고백하고, 오르트루트가 마법으로 백조로 변신시켰던 고트프리트를 제 모습으로 되돌려 놓은 뒤 엘자에게 작별을 고한다. 상심한 엘자가 숨을 거두면서 막이 내린다.

- 페터 콘비츠니는 내놓는 프로덕션마다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문제 연출가로 유명하다. 90년대 중반 이후 그가 내놓은 일련의 바그너 프로덕션들(95년 파르지팔 -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97년 탄호이저 - 드레스덴 젬퍼오퍼, 98년 로엔그린 - 함부르크, 99년 트리스탄과 이졸데 -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2000년 신들의 황혼 - 슈투트가르트 슈타츠오퍼)은 모두가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함부르크에서 공개된 이후 코펜하겐과 바르셀로나에서 연이어 리바이벌되었던 로엔그린은 그 논란의 정점을 제공했던 문제작이었다. ‘해체적인 해석을 통해 원작에 새 생명을 부여한 연출’이라는 극찬에서부터 ‘바그너를 증오하는 이의 우스꽝스러운 패러디’라는 저주에 가까운 혹평까지 함께 받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