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샤 발츠의 춤으로 재창조된 ‘세계 최초의 수중 오페라’

퍼셀의 <디도와 에네아스>는 영국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이요, 바로크 오페라의 대표작 중 하나다. 미국의 마크 모리스가 이를 이용한 무용극을 만들었을 정도로 무용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오페라이기도 하다. 그런데 2005년, 외신은 세계 최초의 수중 오페라 소식을 전했다. 사샤 발츠가 안무한 <디도와 에네아스>가 물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 물이 찬 거대한 수조 앞에 17명의 무용단원이 모였고, 출연자들이야 힘들었겠지만 물의 부력으로 인해 무척 독특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물론 무용수들이 헤엄치는 부분은 개시부에만 포함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성악가와 그 역을 춤으로 표현하는 무용수들이 함께 ‘오페라’를 공연한다. 사샤 발츠가 ‘안무에 의한 오페라’라고 부른 것에 주목하라. 본질적인 무용극이 아니라 오페라에 무용적인 요소를 가미했을 뿐이란 관점이니 말이다.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베를린 보칼 콘소트라는 일류단체가 연주에 참여했다. 모든 장면이 기존의 틀을 벗어난 참신함으로 가득하지만 특히 디도가 풀어헤친 자신의 긴 머리카락에 갇혀버리듯 죽어가는 마지막 안무는 전혀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듯 충격적이다.

보충자료

○ 2004년 사샤 발츠 내한 공연작 <육체>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인간의 육체가 아름답고, 춤을 통해 그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무용예술의 근원을 흔들어버렸기 때문이다. 2005년에 초연된 <디도와 에네아스>도 역시 ‘세계 최초의 수중 오페라 혹은 무용극’이라는 것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작품인데 역시나 예상을 벗어났다. 전위적인 작품은 아닌데도 바로크 오페라의 고전이라는 뉘앙스 대신 의도적인 뒤죽박죽을 지향했다고나 할까?

○ 독일의 여류안무가 사샤 발츠(1963~)는 피나 바우쉬 이후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평가받는 여류안무가다. 1999년 독일 실험극의 산실 베를린의 샤우뷔네 극장에 입성했으며 영국의 가디언지는 “사샤 발츠처럼 철저하게 자기만의 관점을 갖고 인간의 육체를 치열하게 탐구한 안무가는 없었다”고 평했다. 그녀는 칼스루헤 태생으로 유럽 무용의 효시라는 마리 뷔그만의 제자 발트라우트 콘하스에게 배웠다. 이어 암스테르담에서 3년간 수학한 후 1년간 뉴욕에서 지내기도 했다. 2007년에 독일 평론가들이 뽑은 '올해의 안무가‘로 선정되며 탄츠테아터, 즉 상황적 무용, 혹은 극무용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