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는 로버트 윌슨의 세련된 무대

음악으로 사람과 동물은 물론 신과 저승세계마저도 감동시켰던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많은 작곡가들에게 있어서 큰 창조적 영감을 제공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인 페리의 ‘유리디체’, 지금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는 명실상부한 가장 오래된 현역 오페라인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오페라 개혁에 있어서 큰 이정표가 되었던 글룩의 ‘오르페오와 유리디체’ 등등이 바로 동일한 소재를 바탕으로 완성된 오페라 역사상의 중요한 작품들이다. 본 영상은 2009년 9월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있었던 공연실황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시대악기 연주분야의 거물 리날도 알레산드리니의 화려한 연주와 로베르타 인베르니티와 게오르크 니글을 필두로한 정상급 바로크 전문 성악가들의 뛰어난 절창, 그리고 간결하고도 상징적인 무대와 절제된 동작으로 일본 전통극 풍의 무대를 꾸준히 시도하였던 미국 연출가 로버트 윌슨의 감각적인 미장센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 프로덕션이다.

- 오페라의 기원은 르네상스 시대의 목가극에서 찾을 수 있으나 구체적인 탄생은 1590년대 이탈리아 피렌체의 지식인 그룹인 카메라타가 그리스 비극을 음악적으로 부활시키기 위한 작업에서 비롯된다. 야코포 페리, 줄리오 카치니 등이 오페라 탄생에 중대한 기여를 한 작곡가들이다. 그러나 오페라가 귀족의 궁전에서 나와 클래식 음악의 중심에 선 것에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의 공이 절대적이었다는데 이견이 없다. 그는 만토바의 궁정악단에 재직하던 시기에 많은 오페라를 작곡하였는데 안타깝게도 그중 악보가 온전히 전해지는 것은 1607년에 초연된 <오르페오>가 유일하다. 만년의 몬테베르디는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성당에 봉직하다가 이 도시에 세계 최초의 오페라 극장이 설립되자 두 편의 오페라를 더 작곡한다. <율리시즈의 귀환>과 <포페아의 대관>이 그것이다. 이렇게 몬테베르디의 세 작품이야말로 초기 오페라 시대의 3대 걸작이자 그리스 비극 이상으로 장중한 분위기의 명작들이다.

- 오페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대 그리스의 반인반신 음악가인 오르페오는 님프들과 목동들의 축하 속에서 유리디체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 불행히도 유리디체는 독사에 물려 사망하고, 오르페오는 저승에 들어가 유리디체를 구해오리라 결심한다. 지옥의 여왕 프로세르피나의 호의에 힘입어 오르페오는 유리디체를 구할 기회를 갖게 되지만, 성공 직전에 그 기회를 놓치고 만다. 비탄에 빠진 오르페오 앞에 그의 아버지인 아폴로가 나타나 그를 위로하고 별들 가운데에 그를 자리 잡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