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팜므 파탈의 생애를 담은 흥미만점의 현대 오페라

‘안나 니콜’을 기억하는가? 1994년 무려 63살 연상의 석유재벌과 결혼함으로써 세간의 큰 화제가 되었던 금발의 게스 청바지 모델이라면 보다 쉽게 기억이 날 것이다. 결손가정 출신인 이 여인은 우여곡절 끝에 플레이보이 메이트로서 큰 성공을 거둔다. 이후 각종 모델로 잘 나가던 그녀는 죽음을 목전에 둔 늙은 갑부와의 속보이는 결혼을 통해 인생역전에 성공하는 듯 했지만, 유족들과의 지루한 소송 도중에 의문사를 당하면서 안나 니콜의 스토리는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다. 영국의 대표 작곡가 마크-안소니 터니지는 이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한 편의 멋진 크로스오버 오페라로 완성하였다. 전설적인 재즈 드러머 피터 어스킨과 레드 제플린의 베이스시트였던 존 폴 존슨 등이 창작과정에 영감을 주었는데, 이들은 2막의 파티장면에서 밴드 역할로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갖가지 기발한 무대장치들을 총동원한 리처드 존스의 감각적인 연출과 더불어 소프라노 에바-마리아 베스트브뢱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이 이 독특한 오페라를 한층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준다.

 

(보조자료)

- 안나 니콜은 1967년 텍사스 휴스턴 인근의 한 결손가정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두 살 연하의 소년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지만,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그녀는 월마트의 점원과 클럽의 스트립댄서를 전전하면서 생활고에 허덕였는데, 유방확대수술을 받은 이후에 플레이보이 메이트로 발탁되면서 그녀의 인생에도 햇볕이 들기 시작했다. 이후 게스 청바지 모델로 세인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는데, 그의 이름이 결정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것은 그녀의 나이 27세 되던 해인 1994년에 90세의 석유재벌 하워드 마샬과 결혼하면서였다. 그녀의 소원(?)대로 마샬은 이듬해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그녀에게 쉽게 상속되지 못했다. 유산의 상속을 두고 마샬의 유족들과 지루한 소송을 벌이던 와중에 2006년에는 그녀의 아들이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에는 그녀 자신도 호텔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그녀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막을 내렸다.
- 작곡가 마크-안소니 터니지는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통해 영국 음악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곡가다. 체계적인 클래식 음악교육을 받음과 동시에 듀크 엘링턴, 마일즈 데이비스를 위시한 여러 재즈 뮤지션들에게도 몰입했었는데, 이러한 재즈의 영향은 그의 창작 스타일의 큰 개성으로 자리 잡았다. 터니지는 버밍엄 심포니와 시카고 심포니의 상주작곡가를 거쳐서 2005년부터는 런던 왕립음악원의 작곡과 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