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중에서 대중적 인기는 <예브게니 오네긴>이 가장 높지만 <스페이드의 여왕>은 러시아 사회가 안고 있었던 사회적 모순과 갈등을 깔고 있어서 보다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할 수 있다. 오페라는 신분상승의 욕구로 도박에 빠져버린 게르만이 순결한 연인 리자를 비극에 몰아넣고 자기 자신도 파멸시켜버리는 지독하게 어두운 이야기다. 타이틀 롤을 맡은 테너는 7개의 모든 장면에 출연하여 노래하는데, 이는 굉장한 자구력과 가창력을 요구한다. 2010년 여름 바르셀로나의 리세우 대극장 실황인 이 영상물에서 우크라이나 출신의 테너 미샤 디디크는 리리코와 드라미티코를 넘나드는 놀라운 솜씨로 일대호평을 받았다. 또는 연출자 길베르트 데플로와 그의 오랜 동료인 무대장치가 윌리암 오를란디는 사실적인 무대와 의상, 상징적인 장치를 절묘하게 교차시켜 이 오페라의 가치를 남김없이 부각시켰다.
 

( 보충자료 )

○ <스페이드의 여왕>은 1890년 차이코프스키가 50세 때 작곡되었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이므로 후기작품에 해당하며 오페라로는 끝에서 두 번째다. 친동생 모데스트가 대본을 썼는데 원래 다른 작곡가에게 맡길 예정이었다가 차이코프스키에게 넘어왔다. 차이코프스키는 주인공인 게르만과 리자, 그리고 수수께끼의 여인인 늙은 백작부인의 캐릭터에 매료되었고 이를 더 명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직접 대본을 수정하기도 했다.

 

○ 문학적 감수성이 예민했던 차이콥스키는 특히 러시아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슈킨을 좋아했다. 그의 3대 걸작 오페라라는 <예프게니 오네긴>, <마제파>, <스페이드의 여왕>이 모두 푸슈킨의 원작을 사용했을 정도로! <스페이드의 여왕>의 경우 푸슈킨의 원작은 오페라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수정되었다. 푸슈킨은 게르만을 정신병원에 보내고 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지만, 차이콥스키는 강물에 투신한 리자의 자살에 이어 도박에서 패한 게르만도 자살로 삶을 마감하게 바꿈으로서 한층 처절한 비극으로 만들었다.

 

○ 늙은 백작부인이 주도하는 미스터리의 분위기도 이 오페라의 특징이다. 절세미인이었던 그녀는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머물 때 카드에 빠져 지내다가 필승 카드의 비밀을 알아냈다. 그러나 그 비밀이 자신의 죽음을 가져올 것이란 예언을 접하고는 가슴 속에 비밀을 봉인한 채 외부와 벽을 쌓고 지낸다. 결국 게르만 때문에 죽음을 맞은 다음에는 으스스한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 살인자에게 파멸의 단서를 선사하게 된다. 오페라 제목 <스페이드의 여왕>은 기본적으로 카드놀이에 있어서 스페이드 퀸을 나타내지만 다른 한편으론 백작부인까지 상징하는 중의적인 의미라고 하겠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이중적 상징이 확고하게 부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