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핀란드 소설가 유하니 아호(Juhani Aho)의 소설 <급류의 찌꺼기(L'ecume Des Rapides)>를 흑백의 무성 영화로 각색한 작품. 자본주의에 희생돼가는 핀란드 노동자의 삶을 에이젠슈타인의 무성영화적 박력과 30년대에 장 비고가 만든 <아탈랑트>와 유사한 서정미를 결합시켜 묘사했다.
젊은 여자 주인공 마야는 자동차 고장으로 자신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는 세메이카에게 유혹된다. 결국 이 둘은 도시로 도망가지만 세메이카는 마야에게 매춘을 강요하고, 마야의 남편 유하는 그녀를 찾아 나서는데.

무표정과 커다란 웃음소리가 부재한 감독의 차기는 언젠가는 무성에 있을 거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것이다. 감독 생활 17년 만에 그는 자신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21세기라는 미래의 종합 편을 완성한다. 더불어 본편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현재까지의 모든 작품 중에서 하나의 정점을 이룩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유하에서는 종전에 구사하지 않았던 플래쉬백 사용, 원형적인 캐릭터, 풍부한 독해 가능성, 선배 작가들에의 경의가 이항 대립적인 읽기, 허무하고 회의적인 복수, 언해피한 엔딩으로서의 아기 탄생의 출발과 같이 담겨져 있다.
데뷔작인 "죄와 벌"과 마찬가지로 본편은 19세기 유럽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20세기의 마지막 해의 시간을 19세기와 동일시하는 사고는 예견했던 바와 같다. 감독의 눈에는 사민주의가 점점 더 퇴조하는 핀란드도 역시 막스의 19세기 노동 지옥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단편적인 성장 여부의 논쟁과는 별도로 자본주의의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유럽 좌파 감독들과 동행선이다. 본편은 그간 거의 도시를 떠나지 않았던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처음으로 농촌에서 시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