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헝가리를 배경으로 당시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퀴어 멜로드라마 속에 녹여낸 작품. 어렵게 신문사에 취직한 에바는 직장 동료인 리비아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그러나 당시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관계의 진전에 어려움을 겪다가 취재여행을 떠나며 급속히 가까워진다.

1. [또 다른 길]의 시대 배경은 헝가리의 자유화 물결이 실패로 끝났던 50년대 말 또는 60년대 초이다.
헝가리 사람들한테 결코 편한 시기는 아니었다. 세상은 서서히 다시 자기 궤도로 돌아오고 있었지만 희망은 사라졌고 자존심은 구겨졌으며 무기력과 우울증이 판을 치고 있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에바도 예외는 아니다. 필화로 쫓겨났다가 2년만에 간신히 신문사에 복직하기는 했는데, 도대체 타협이란 걸 모르는 이 정직한 저널리스트가 살아남기엔 세상이 너무 더러웠다. 에바의 유일한 무기는 냉소지만, 솔직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녀는 그것도 그렇게 잘 하지 못한다. 정말 세상을 힘들게 사는 사람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에바의 연애담도 그렇게 예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에바는 사무실을 같이 쓰는 리비아와 사랑에 빠지지만, 50년대 말 헝가리는 커밍 아웃한 동성애자한테도 별로 좋은 곳은 아니었다. 세상은 양쪽에서 에바를 덮쳐 누르고 에바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로지 하나 뿐이었다...
2. [또 다른 길]은 기네스적인 의미에서 기념비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는 동구권 유럽에서 제작된 최초의 동성애 영화이다. 80년대 초반의 공산국가에서는 굉장히 대담한 시도였을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에르즈베트 갈고치가 쓴 [Torvenyen Belul]이라는 자서전적인 소설이다. 과연 에바와 리비아 어느 쪽으로 자서전적인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너무 어둡고 결말도 비극적이어서 온전한 정신으로 소설을 쓸만한 생존자가 나왔을 것 같지는 않다.
민족 스테레오 타입에 매달리기는 싫지만, [또 다른 길]은 정말 헝가리식으로 우울한 영화이다. 술집 피아니스트가 되풀이해서 치는 [우울한 일요일] 만큼이나 마자르식 멜랑콜리가 넘쳐 흐른다. 아무래도 문화적 전통인듯.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우울증을 술 대신 마신다. 모두 어떻게 하면 자신과 상대방을 철저하게 망가뜨릴 수 있나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 같다. 만약에 에바나 리비아가 조금이라도 앞일을 계산하고 미래의 동반자처럼 굴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작정하고 함정에 빠진다. 결과는 당연히 치명적이다.
 [또 다른 길]의 동성애는 동성애 자체로보다는 정치적인 은유로 더 잘 먹힌다. 리비아의 장교 남편까지 이야기에 끌어들인다면 더 그럴싸한 모양이 만들어진. 이 영화의 폭력적 결말을 56년 사태의 비극적인 결말과 연결시키지 않고 영화를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