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촬영감독 겸 영화감독. 잭 카디프(Jack Cardiff)는 1914년 9월 18일 영국 노퍽 주 야머스(Yarmouth)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존 조지 제임스 그랜(John George James Gran)이다. 카디프의 부모는 희극배우였다. 그래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따라서 뮤직홀이나 극장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한때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그의 부모는 이따금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그리하여 잭은 4살 때 <나의 아들, 나의 아들>(My Son, My Son, 1918)이라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카디프는 1929년 노먼 워커(Norman Walker) 감독의 <증오의 배>(The Hate Ship, 1929)에서 카메라 조수로 일하면서 촬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전설적인 촬영감독인 프레디 영(Freddie Young)이 이끄는 촬영부서에 들어가서 촬영기술을 익히게 되었다. 카디프는 어네스트 쇼드섹(Ernest B. Schoedsack) 등이 공동 연출한 <폼페이 최후의 날>(The Last Days of Pompeii, 1935)에서 촬영을 맡음으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36년 카디프는 덴햄 스튜디오(Denham Studios)에서 카메라기사로 승급했는데, 이듬해에는 해롤드 슈스터(Harold D. Schuster) 등이 공동 연출한 <아침의 날개>(Wings of the Morning, 1937)라는 영국 최초의 테크니컬러 필름(Technicolor film)에서 카메라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카디프는 <신성한 갠지스 강>(The Sacred Ganges, 1938), <인도의 신전>(Temples of India, 1938), <델리>(Delhi, 1938), <인도의 궁전>(Indian Durbar, 1939), 그리고 <인도의 한 마을>(A Village in India, 1941) 등의 필모그래피에서 알 수 있듯이 인도에 관한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들에서 촬영을 맡았다. 이를 통해서 현장성과 순발력을 익힌 그는 194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극영화의 촬영을 맡게 된다.

카디프는 아흔 살이 넘은 2007년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생애 통산 86편의 영화에서 촬영을 맡았고, 15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그는 2009년 4월 22일 영국 케임브리지셔 주 일리(Ely)에서 사망했다. 그는 대영제국 4등 훈장(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았으며,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했다. 그는 영국카메라기술자조합(Guild of British Camera Technicians)의 명예회원이었으며, 영국촬영감독협회(British Society of Cinematographers)의 정회원이었다.

잭 카디프는 1940년대 들어와서 마이클 파웰(Michael Powell)과 에머릭 프레스버거(Emeric Pressburger)가 공동으로 연출한 <천국으로 가는 계단>(A Matter of Life and Death, 1946)에서 처음으로 전업 촬영감독을 맡았다. 이듬해부터 그는 역시 두 사람이 공동으로 연출한 <검은 수선화>(Black Narcissus, 1947)와 <분홍신>(The Red Shoes, 1948)에서 잇달아 촬영감독을 맡음으로써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카디프는 <검은 수선화>로 1948년 아카데미 컬러부문 최우수 촬영상(Best Cinematography)과 골든 글로브(Golden Globes) 최우수 촬영상을 동시에 수상함으로써 역량을 과시하게 됐다. 그는 이들 영화들을 찍으면서 화가 베르메르(Vermeer)와 카라바조(Caravaggio)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카디프는 1950년대 들어서 활동영역을 넓히게 되는데, 존 휴스턴(John Huston) 감독의 <아프리카의 여왕>(The African Queen, 1951)의 촬영을 맡아서 콩고로 로케이션을 가기도 했다. 1953년에는 에롤 플린(Errol Flynn)의 연출의뢰에 따라서 <윌리엄 텔의 이야기>(The Story of William Tell, 1953)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이 영화는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로 찍은 두 번째 영화가 될 뻔했지만, 제작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미완성(단편)으로 남게 되었다. 그는 1956년에는 킹 비더(King Vidor) 감독의 대작영화인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1956)에서 촬영감독을 맡을 만큼 유명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제안으로 <왕자와 무희>(The Prince and the Showgirl, 1957)라는 영화의 촬영을 맡았는데, 연출은 그녀의 상대역인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가 했다.

 
 
카디프는 1960년대 들어서도 왕성하게 활동을 했는데, 조슈아 로건(Joshua Logan)이 연출하고, 그가 촬영을 맡은 <패니>(Fanny, 1961)는 아카데미 최우수 촬영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그가 연출을 하고 촬영까지 한 <용병>(The Mercenaries, 1968)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이따금 연출도 했지만, 1970년대를 거쳐 80년대로 들어서는 거의 촬영에만 전념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리처드 플라이셔(Richard Fleischer) 감독과 여러 편의 작품을 함께 했는데,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 1977)를 비롯해서 아널드 슈왈츠네거(Arnold Schwarzenegger) 주연의 흥행작 <코난>(Conan the Destroyer, 1984)과 <밀리언 달러 미스터리>(Million Dollar Mystery, 1987) 등에서 촬영감독을 맡았다. 그는 또한 세계적인 흥행작인 실베스터 스텔론(Sylvester Stallone) 주연의 <람보 2편>(Rambo: First Blood Part II, 1985)에서 촬영감독을 맡은 것으로 유명했다.